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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향년 100세로 사망

by 나토리 2023.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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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는 미국 내각 구성원 중 가장 나이가 많았으며, 사망 전 리처드 닉슨 대통령 내각의 마지막 생존자였습니다.

 

 

헨리 키신저는 1923년 독일에서 태어나 1938년에 가족과 함께 나치 독일에서 탈출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군에 통역사로 입대하고, 이후 귀화 시민이 되어 방첩 공로로 동성훈장을 받았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대통령의 교수이자 국가 안보 컨설턴트로 일하게 됐습니다. 1969년에는 닉슨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되었고, 1973년에는 국무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중에는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의 전쟁 범죄 용인과 베트남 전쟁에서의 역할에 대한 비난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미국이 1969년에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비밀리에 폭격했다는 사실을 의회에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받았습니다.

키신저는 레득토와의 비밀 회담을 통해 베트남 전쟁을 종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 결과 1973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키신저는 지미 카터 대통령 당선 이후 퇴임했으며, 이후에는 다양한 이사회와 대학 교수직 등을 맡았습니다. 그는 핵무기에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며 계속해서 정치적 고정관념을 유지했습니다.

2016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외교 정책을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행정방식에 대해 그는 "그의 입장이 너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문제를 대결로 바꾸는 쪽으로 발전하면서 나는 덜 열정적으로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키신저는 개인적으로 두 번의 결혼을 했으며, 두 자녀와 다섯 명의 손주가 있습니다. 그는 평생 축구 팬이었으며, 그의 고향 축구 클럽인 SpVgg Fürth의 명예 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친구인 언론인 바바라 월터스는 키신저가 어릴 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축구 경기에서 제외됐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이 축구 경기를 관람하러 갔을 때, 키신저를 알아본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인사를 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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